
BIM 작동 리포트
2026년 5월 29일
BIM을 하고 있다는 것과, BIM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
BIM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건 수치로도, 현장 분위기로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요즘 그 관심의 결이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한때 BIM은 투자의 언어로 팔렸습니다. 도입하면 비용이 줄고 공기가 단축되고 수익이 좋아진다는 식이었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기대를 품고 도입했다가 현장에서 좌초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거품이 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시선이 수익 창출보다 리스크 예방 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걸 하면 더 벌 수 있다"가 아니라 "이걸 안 하면 나중에 감당하기 어렵다"는 방향으로요.
현장이 그만큼 솔직해졌다는 뜻이기도,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숙련된 사람이 줄었습니다. 굳이 지침을 보지 않아도 감각으로 잡아내던 사람이 확실히 적어졌고, 그 빈자리를 프로세스와 데이터가 채워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관리자가 알아야 할 것도, 책임질 범위도 그만큼 넓어졌습니다.
최근 또다시 불거진 철근 이슈를 보며 그 생각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해당 현장에 철근 BIM이 업무 범위에 있었는지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BIM을 하고 있다는 것과, BIM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도면이 있고 검토도 여러 번 거쳤는데 왜 놓쳤냐는 질문 앞에서, 저는 오래전 다른 현장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명품 브랜드의 웰컴 데스크 제작 건이었습니다. 배 모양의 커다란 데스크를 CAD 도면 기반으로 제작용 BIM 모델로 만드는 작업이었죠. 책임 담당자는 공을 들였습니다. BIM 작업자를 직접 매장 두세 곳에 데려가 샘플을 보여주며, 어떤 마감과 형태감이어야 하는지를 눈으로 보게 했습니다.
작업자는 도면을 받아 비정형 소프트웨어로 모델을 완성했고, 책임자 검토를 거쳐 제작 공장으로 파일을 넘겼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서대로였습 니다.
그런데 공장을 찾은 담당자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부드럽게 라운딩되어야 할 배 끝부분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각이 서 있었습니다. 전시는 이틀 뒤. 결국 담당자는 다른 공장으로 달려가 손 스케치로 형태를 그려줬고, 장인이 밤을 새워 가구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원인을 추적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찾아낸 원인은 기술적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작업자가
"3D PDF로 만들어 보내드릴까요?"
라고 물었을 때, 코디네이터가 답했습니다.
"그냥 화면 캡처해서 카톡으로 보내. 괜히 시간 쓰지 말고."
캡처 이미지가 카톡으로 전송됐고, 노안이 있는 담당자는 운전 중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그것을 보고 OK를 눌렀습니다. 칼날 같은 끝이 보일 리 없었습니다.
모델은 완성됐습니다. 검토 단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은 틀렸습니다.

이 장면이 말하는 건 하나입니다. 누구의 시선으로 데이터를 만들고, 누구의 상황에서 검토가 이루어지는가. 만드는 사람 관점으로만 정리하면 반드시 놓치는 게 생깁니다. 받아보는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상태로 그것을 보는지를 먼저 생각했어야 합니다.
언어가 달라도 작업자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나사 돌리는 방향과 횟수까지 그림으로 그려 넣은 조립 매뉴얼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급 리테일 가구를 해외 공장에서 만들기 위해 프라모델 설명서처럼 모든 단계를 시각화했다고요. 인상 깊었던 건 디테일이 아니라, 작업자가 스스로 맞게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설계 철학이었습니다.
최근 AI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주목받습니다. 하네스(Harness), 헤르메스(Hermes) 엔지니어링처럼 AI가 스스로 결과를 검증하는 루프를 만드는 방식이죠. 핵심은 단순합니다. 외부에서 누가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스스로 "이게 맞나?"를 확인하게 설계한다는 것. 기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BIM 검토에서도, 현장 관리에서도 같은 질문이 유효합니다.
이 프로세스는, 중간에 누가 놓쳐도 스스로 걸러낼 수 있게 되어 있는가.


현장 곳곳에서 DX, AX라는 말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용어의 의미도 모호한 채로, 임원에게 설명할 자료를 보충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고 지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과거의 경험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려 하면 계속 어긋납니다. BIM도 AI도 안에 쌓인 논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식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해했다 → 해봤다 → 할 수 있다 → 가르칠 수 있다. 많은 분이 '이해했다'를 '안다'로 여기지만, 이 시대에 '이해했다'는 출발선일 뿐입니다. 자전거는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라 넘어지면서 타게 됩니다. AI도 BIM도 비용을 쓰고 막히고 다시 해보는 과정을 거쳐야 감이 잡힙니다.
'캡처로 보내'라고 말하는 위치일수록, 한 번이라도 직접 부딪혀 봤느냐가 판단의 질을 가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낯선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사람을 읽어온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자산입니다. 기술이 작동하는 맥락도 결국 사람이고, 데이터가 놓치는 것도 결국 사람의 자리에서 생깁니다. 표정과 몸짓, 상대가 받아들일 타이밍을 읽는 능력 — 그것이 프로세스 설계에서도 검토 체계를 만드는 일에서도 핵심으로 작동합니다.
BIM을 하느냐 마느냐는 이미 지난 질문입니다. 지금 물어야 할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 BIM이, 운전 중 작은 화면으로 보고 OK를 누르는 상황에서도 버티도록 설계되어 있는가.